삶의 습작/시시껄렁 | Posted by 중력에 反하기 2012.03.06 13:53

아버지의 등을 밀며 - 손택수 -

아버지의 등을 밀며 

- 손택수 -

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 
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 
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 
누가 물으면 어머니가 미리 일러준 대로 
다섯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 
언젠가 한 번은 입 속에 준비해둔 다섯 살 대신 
일곱 살이 튀어나와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 
 
나이보다 실하게 여물었구나, 누가 고추를 만지기라도 하면 
어쩔 줄 모르고 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던 목욕탕 
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으리만치 커버린 뒤론 
함께 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부자들을 
은근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하였다 
 
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, 좀 더 철이 들어서는 
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 
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 
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 
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 
 
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온 뒤의 일이다 
그렇게 밀어 드리고 싶었지만, 부끄러워서 차마 
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 
해 지면 달 지고,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 
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 
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 
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 
 
(손택수·시인, 1970-)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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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... 그냥... 가슴이 짠하다.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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